無名    드라마 삼국(95부작) 일부 감상 2011-05-24 21:32



작년 여름 즈음에 슥슥 썼던 95부작 드라마 삼국 중 일부 에피소드 감상입니다.
전체 다는 아니고 그냥 특정 부분만 드문드문이에요. 거기다 개인공간에 썼던 거라 매우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오글라들지만 혹시나 누가 좀 보고 낚여주실까 해서 올려봄. 이 드라마 꽤 볼 만하거든요.

내용은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인데 뭐 과하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어차피 연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는 드라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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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 조조曹操

寧肯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사실 저 짧은 문장만큼 조조란 사내를 잘 설명해 낼 수 있는 말도 드물다. 저 외에 무슨 말이 더 어울리겠으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사소한 오해로 여백사의 일가를 참살한 조조는 결국 도망치는 길에서 만난 여백사마저 죽이고 말았다. 진궁의 경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심지어 날이 궂으니 여백사 일가의 집으로 돌아가 몸을 추슬러야겠다고 말한다. 먹고 마실 것이 죄 준비되어 있을 텐데 그냥 떠나 버리면 정말 개죽음이 되지 않느냐면서. 제가 베어 죽인 무고한 자들의 혈흔이 낭자한 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돼지를 잡아 탕으로 끓이는 조조를 보며 진궁은 회의에 사로잡힌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조조가 강개한 충의지사라 믿고 처자와 관직마저 버렸다. 그러나 중모현 옥에서 한실의 앞날을 걱정하던 조조와 여백사의 시체를 뒤에 모셔 놓고 고깃국을 뒤적이는 조조는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진궁을 보며 조조는 그저 웃는다.

공대公臺 형, 옛부터 큰 간악은 충의와 비슷하며 큰 거짓은 참과 비슷한 법이오. 충의와 간악, 둘 다 겉만 보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그대가 어제 나 조조를 잘못 보았던 것일지도 모르지. 오늘 또 한번 나를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허나 나는, 여전히 나요. 나는 한 번도 남이 나를 잘못 볼까 두려워한 적이 없소.

처음 중모현에서 진궁과 재회했을 때, 조조는 자신을 비웃는 그를 향해 짐짓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겠는가 뇌까렸더랬다.
과연, 이 드라마의 조조는 진실로 홍곡이다.





4-5화 : 유비劉備, 그리고 다시 조조曹操

그는 제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 둘만을 데리고 연맹군의 본진을 찾았다. 아무도 가진 것 하나 없는 그들 삼형제를 제후의 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마음을 기울인 것은 조조뿐이었다. 화웅을 벤 대가로 원소가 내어주마고 약속한 병마며 군량은 그림자 끝조차 보이지 않을 때 술과 고기를 싣고 허름한 유비의 막사를 찾아온 것 역시 조조였다. 패현의 미주美酒를 놓고 마주 앉아, 두 효웅은 비로소 처음으로 흉금을 터놓을 기회를 얻었다.

조조는 말한다. 자신은 한의 위태로움이 가슴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쁘다고. 유비가 그 이유를 묻자 예의 헤헷, 하는 체신머리없는 웃음과 함께 그가 내어 놓는 대답은 이렇다.
하夏는 오백 년만에 상商에 망하고, 상은 오백 년만에 주周에 망했지. 주는 삼백 년만에 춘추전국의 난으로 빠졌소. 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면 영웅이 무리지어 나오는 법. 이로써 보면 국운의 성쇠는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이오. 난세가 없다면 어디에서 영웅이 나오겠소? 그대도 생각해 보시오. 만일 태평성세였다면 그대는 고작 돗자리 짜고 짚신 파는 장수에 지나지 않았을 거요. 나 역시 문지기 교위로 끝났을 테지.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덕에 그대와 나 모두 불세출의 공명을 떨칠 수 있지 않겠소?

이것은 드라마가 진행된 지 4화만에 조조가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모습이다. 조조는 단 한 번도, 제 목숨을 구해 준 진궁이나 저를 도우러 한달음에 달려 온 일가 권속들 앞에서조차 단 한 번도 이렇게 제 속을 온전히 드러내 보인 적이 없다.
그러나 잘라 말해 역적, 돌려 말해 봐야 간웅답다고밖에 못 할 저 말을 듣고서도 유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저 미미하게 웃으며 말할 뿐이다. 보아하니 조 공께서는 이 난세를 위해 태어나신 것 같습니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근원은 사람의 마음이 상한 데에 있습니다. 그러하니 천하를 평안케 하려거든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할 일입니다. 그 마음의 근본은 천도天道를 따르고, 인의를 행하며, 충효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는 유비라는 사람의 진심이다. 팔색조처럼 천변하며 경박하게 굴다가도 어느 순간 더없이 진솔하고 무거워지는, 도저히 그 사람됨을 짚어 알기 어려운 조조와 달리 그는 누구 앞에서건 한결같이 여상하며 차분하고 진중하다. 다른 사람 앞에 제 진심을 구태여 숨기고 감추려 하지 않는다. 조 공께서는 설마 군왕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이냐고 물을 때도, 연맹군의 제후들은 동탁을 질투하는 것뿐이라 말할 때도 그는 언제나 진심이다. 다만 그 진심이라는 것의 깊이를 도저히 알기 어려울 뿐이다. 경서에서 오려내온 양 판에 박힌 말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며, 조조는 유비의 그 한결같음을 두렵게 여긴다. 본래는 제 수하에 넣고자 찾아온 걸음이었으되 돌아가는 길에 남은 것은 저 자가 일생의 적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그러나 아마 필경은 그렇게 되고 말리라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유비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42-43화 : 화용도華容道

그는 당당하다. 다치고 상한 스물 일곱 명의 패잔병만을 데리고 적토 앞에 서서도 살려 달라는 소리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관우다.

그대가 다섯 관문을 지나며 나의 여섯 장수를 참했던 일을 잊었소? 그대가 내 수문장을 그리 많이 죽였음에도, 나는 오히려 그대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괴롭히지 말라 명하여 그대들 형제 셋을 다시 모이게 해 주지 않았소!
야속한 님을 향한 질타와 원망일지언정 나 좀 살려 달라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자못 친근하게 운장, 하고 부르며 조조는 말한다. 그대와 나처럼 깊은 정을 나눈 이들이 전장에서 적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인생의 괴로움이 어디 있겠느냐고. 살아서 끌려가는 욕을 당하느니 예서 한 사람 영웅인 그대의 손에 죽겠노라며 칼을 뽑아 관우에게 건네는 그의 모습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다. 울며 말리는 수하들에게 관 장군을 곤란하게 하지 말라며 일갈하는 모습도, 차마 입을 열지조차 못하는 관우에게 사실은 그대도 나를 죽이고 싶지 않을 거라 다독이는 모양도 그야말로 일세 영웅의 칭호가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이 남자, 조조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그 후다.

내가 떠나면 군령을 위반한 그대는 어찌 되겠느냐며 고집을 부리던 조조를 억지로 말 위에 실어 떠나 보내고, 관우는 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군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관우와 헤어져 한참을 달리던 조조는 강이 보이자마자 굴러 떨어지듯 말에서 내린다. 사실 굴러 떨어졌다는 표현 그대로가 맞을 것이다. 몇 번씩 고꾸라져 가며 물가로 기어가 더러운 흙탕물을 거푸 들이키는 모습에서는 영웅의 풍모도 승상의 체통도 찾기 어렵다. 온 몸에 맥이 풀려 흙바닥에 쓰러진 채로, 그러나 지독히도 빛나는 눈을 하고서, 그는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한다.

관우가 쫓아오지는 않았다만 언제 후회할지 모른다. 지금부터 걸리적거리는 물건은 모두 버려라. 장창까지 전부. 남군까지 돌아가기만 하면, 성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우리는 대승을 거두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깃발, 그 장군기도 버려라.
앞서 오림에서 일패도지로 쫓기면서, 조조는 장군기를 버린 병사에게 끔찍하게 화를 내었더랬다. 머리가 떨어지고 목숨이 꺼질 수는 있으나 깃발을 잃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며. 조조와 십 년을 함께했던 병사는 울먹이며 장군기를 제 어깨에 둘러 묶고 거기까지 조조를 따라 왔다. 그런데 이제 그 깃발을 버리라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병사에게 조조는 말한다. 버려라. 아까워할 것 없다. 남군까지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새 깃발을 백 개 천 개 만들어 주마.

그리하여 버려진 장군기를 말발굽 아래 짓밟으며, 조조는 남군으로 향한다.
그 순간 나는 새삼스럽게 이 남자에게 반하고 말았다.


無名
드라마 홧수가 너무 많아서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쩔어줄 줄이야...! 필 감상 해야겠네요 ㅠㅠㅠㅠ 와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른 캐릭터들 해석도 어떨지 궁금해요 ㅠㅠㅠ 2011-05-24 21:32
 


無名
아ㅠㅠㅠ 화용도 부분 너무 좋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안그래도 삼국 쩐다고 보라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만 ㅠㅠㅠㅠ 이거 진짜 물건인가요 ㅠㅠㅠㅠ 2011-05-24 21:32
 


無名
사실 좀 편차가 있는 편입니다. 재조명/재해석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괜찮은데 그냥 평이하게 가는 경우도 있고, 아예 공기 취급 받는 경우도 있고요. 전자로 조조나 유비를 비롯해 사마의, 순욱, 노숙, 손권 등을 꼽을 수 있다면 관우/장비는 그냥 평이한 케이스고, 위와 오의 여타 문무관리들은 병풍 내지 조연 스멜을 강렬히 풍기는 사람들도 많아요.
에피소드도 어떤 건 공들여 각본 쓴 티가 나는데 어떤 건 통째로 스킵해 버리기도 합니다. 보실 분들은 감안하세요.
2011-05-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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