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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룡]  いちご-いちえ (一期一絵) - 02 [3] 2010.11.29-2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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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ちご-いちえ (一期一絵) - 02















"공명님."



이른 아침. 공명은 자신을 조심스럽게 불러오는 하인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조금 늦잠을 잤나. 공명은 어제밤도 늦게까지 공무를 봤던 것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피곤하다. 공명은 간신히 힘을 넣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빛은, 아직 그다지 밝지 않았다. 조금 흐린 날인가.



"내가 평소보다 늦었는가."



공명의 물음에, 하인은 송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어째서? 라는 듯한 공명의 눈빛에 하인은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 지금이 몇시인가?"
"묘시 정도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문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닐까. 눈살을 찌푸리던 공명은 문득 이 곳은 원래 살던 평화롭던 곳이 아니라,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전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무언가 군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별로 그러한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지만.."



작게 한숨을 내쉰 공명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완전히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런 공명에게 세숫물을 대령하는 하인에게 공명은 잊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손님이라니. 누구인가?"
"조자룡 장군님이십니다."



툭, 공명이 들고 있던 비누가 손에서 떨어져내렸다.

















유비의 방은 성안 가장 중앙에 위치해있었다. 복잡한 복도를 통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기에 자객의 공격을 어렵게 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었다. 자룡은 그 방의 밖에 위치한 대기실에 앉아 자신이 부른 사람이 나타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오래걸린다. 자룡은 자신이 일찍 찾아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시녀가 내어준 차가 탁자 위에서 식어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장군님."



자룡은 자신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찻잔에서 시선을 떼었다. 기대하던 목소리가 아닌데. 자룡은 자신을 부른 상대에게 시선을 맞추자 그가 황망하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보고 츳,혀를 찼다. 그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으로 보건데, 공명이 만남을 거절한 듯 싶었다. 그제서야 자룡은 자신이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이 곳으로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말타기를 하는 자룡이었기에, 그에게는 아주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다른 자들에게는 충분히 이른 시간일 수 있는 터였다. 오히려 무례를 범한 것은 이쪽이로군. 자룡은 씁쓸하게 생각하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만나주시지 않으신다고 하시던가?"
"아닙니다. 장군님. 안으로 드십시오."
".... 안으로?"
"예."



어째서, 나오시지 않고. 조금 당황하면서도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자룡이었다.



"이쪽으로 뫼시게."



유비의 사실 앞에 서자, 공명이 오기 전부터 유비의 시중을 들던 하인이 웃으며 그를 마주했다.



"어서오십시오, 장군님. 하오나 너무 이른 시간이외다."
".... 주군께서도, 안에 계신가?"
"아닙니다. 장군. 유황숙님께서는 어제도 내실로 드셨습니다."



어제도? 자룡은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의아함을 가지고 하인의 안내에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방은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으나, 공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룡은 어색한 기분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 유비의 방에 들어선 것은 그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째서, 대기실로 나오지 않고, 자신을 이리로 부른 것인가. 자룡은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유비와 공명의 기색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눈살을 찌푸렸다.





"기다리게 하여 죄송하나이다. 장군."



잠시 후, 평소와 같이 단정하게 남색 관복을 걸친 공명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날이 밝았는가. 자룡은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은 방안의 분위기를 느끼며, 공명에게 예를 갖췄다. 그런 자룡의 예에 맞춰 공명도 공손히 읍했다. 눈치빠르게 하인이 둘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가자 공명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를 자룡에게 권했다.



"이른 시간에 찾아오신 듯 하여, 중요한 내용일까 싶어 일부러 안으로 모셨습니다."



자룡은 자신의 앞에 차를 따라 내어주고 있는 공명에게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희고 가는 손.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었다, 자룡은 두서 없이 생각했다. 조용한 방안에는 공명의 옷자락이 상 위에 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어쩐지 나른하다. 자룡은 차의 향기라도 음미하는 듯,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기다려도 용건이 나오지를 않자, 공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생긴 얼굴이다. 공명은 다시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여성같은 느낌을 주는 자신과 달리 선이 굵고 늠름한 얼굴. 분명, 많은 사내들이 꿈꿀 법한 이상적인 외모였다. 자신과 키는 크게 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뼈대의 차이는 확실하다. 공명은 따뜻한 차를 한모금 입안으로 흘려넣었다. 지금은 훈련복이 아닌 평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 아래 있는 강한 육체를 느낄 수 있었다. 잘 다듬어진 신체. 공명은 흘낏, 가느다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저렇게 강인한 무인에게는, 나와 같은 존재는 영락없는 애송이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공명은 자룡의 대답을 기다리며, 그의 얼굴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는 놀랄 정도로 부드러웠다. 공명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시선을 피했다.



"주공께서는, 이곳에서 주무시지 아니하셨습니까?"



뜬근없는 질문이다. 공명은 툭 던져진 질문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지만 이내 성실하게 대답했다.



"원래 이 곳에서 주무시는 경우는 거의 없으십니다. 주모님들과 아두님께서 계시는 내실에서 밤을 보내시지요."
"그렇군요."



공명의 대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자룡은 빈틈없는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 눈빛에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조금 움츠러 든 공명은 덩달아 방을 살폈다. 이상한 점은 없는데. 공명은 왜 자신이 지금 이 사내와 마주앉아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찾아올 정도면, 분명히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째서 말을 꺼내지조차 않는 것인가. 공명은 새벽부터 불편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주공께서 저를 군사의 호위무사로 임명하신다고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들은 바가 있으십니까?"
"... 콜록."



그렇다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서두도 없이 용건으로 들어갈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한 공명은 무심코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성급하게 삼켰다. 기도로 타고 올라갔는지, 예기치 않은 기침이 터져나왔다. 콜록, 콜록. 몇 번 더 기침을 하는 공명을 당황한 듯 바라보던 자룡이 품안에서 작은 천조각을 꺼내 공명에게 건냈다.



"죄송합니다. 군사. 제가 당황스럽게 해드린 것 같군요."
"... 아닙니다. 조장군."



간신히 숨을 돌린 공명이 자룡이 건낸 천조각을 입술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기침을 해서인지 조금 붉은끼가 도는 뺨이 어린아이의 것처럼 매끈했다. 자룡은 수염조차 돋아나지 않는 것 같은 공명의 깨끗한 피부를 보며, 무의식중에 한 손으로 자신의 뺨을 쓸었다. 집에서 나서기 전에 분명히 면도를 했음에도 손바닥에서 까슬한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 조금 전 장군께서 말씀하신 사항 말입니다."



잠시동안의 어색한 침묵을 깨고, 공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전해들었습니다만.. 무리한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장군."
"...."
"주공께 제가 철회해달라고 말씀드리겠으니, 부담 가지실 필요 없을 듯 합니다."



공명의 말에 자룡은 슬쩍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분명, 귀찮을 수 있는 일이다. 자룡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지금 맡고 있는 일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워낙 인재가 적은 유비군이었기에, 몇 안되는 장군들이 해야하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무엇보다도 훈련이 잘 되지 않은 신병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싸움을 대비해서 전술을 공부하고, 무예를 닦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자룡은, 자신의 눈 앞에 앉아서 찻잔을 바라보고 있는 상대를 응시했다. 이 사람을 혼자두는 것은, 안심이 되질 않는다. 어째서인지 물어오면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닙니다. 군사."
"....?"
"소장은,  그 명을 받들기로 했습니다."



자룡의 말에 놀란 듯 공명의 눈이 커졌다. 원래도 큰 눈이 더욱 커지니까 조금 무섭기도 한걸. 자룡은, 장난끼가 섞인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 곳은, 전장입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공격을 받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곳이지요. 헌데 군사께서는 무술에는 전혀 조예가 없어보이십니다."
"... 사대부니까 기본적인 무술은 할 수 있습니다."
"...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군사를 암살하고자 고용된 사람들은 정식으로 무술을 구사하는 자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의 공격은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군사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 자체만이 목적인 자들을 상대하시기에는 무리가 있으시겠지요."
"......"
"또 한번, 우리 군의 군사를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룡의 설득력 있는 말에 공명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문관의 역할도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조리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다. 공명은 자신을 마주보아오는 검은 눈동자가 무척 부드럽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어쩌면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을까. 사(死)를 불러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인데. 자신을 집요하리만큼 응시해오는 시선에 공명은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빗겼다.



자룡은 자신의 시선을 피한 공명의 매끈한 뺨이 슬쩍 붉어진 것을 보며 속으로 웃음지었다. 아직 어리다. 그리고 마음이 여리다. 재능은 있을지 몰라도 세상에 대한 경험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아. 자룡은 앞으로 공명이 행해야 하는 많은 일을 생각하며 웃음을 멈췄다. 죽음을 마주보고 살아야만 하는 삶. 이토록 맑은 이에게는 쉽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어찌하여 주군은 이렇게도 여린 사람에게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끔 하셨던가.



"그럼.. 감사히, 장군의 배려를 받겠습니다."



자룡은 문득 들려오는 공명의 목소리에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났다. 어느새 다시 자신을 마주보아오는 서늘하게 트인 맑은 눈을 마주 바라보며 자룡도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같이 등청하실까요?"










































"꼭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장군."



둘이 걸어가는 내내 따라붙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공명은 들고 있던 학우선으로 살짝 얼굴을 가린 채로 자룡에게 나즈막하게 말을 건냈다. 하지만 자룡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공명에게 작게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정말.. 공명은 자신의 불편한 위치를 자룡이 제대로 알기는 하는 걸까, 싶은 기분에 눈을 내리깔았다. 이 군 내에서 겉도는 자신에 대해 자룡은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의 곁에 있음을 사람들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
"자룡!!"



생각이 그렇게까지 미치자 좌불안석이 된 공명이 자룡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어디에선가 우뢰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등장한 거구의 사내. 유비의 의제인 연인 장비였다. 장비는 자룡의 곁에 서 있는 학과 같이 기다란 공명이 영 못마땅한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원래도 사납게 생긴 얼굴이 사나운 표정을 자아내자 뭇사람들이라면 벌벌 떨정도로 험상궂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지금 물과 함께 무엇을 하는게오?"



온 복도를 울려퍼지는 무례한 장비의 말에 공명의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군사를 호위하는 중이오, 장 장군."



하지만 자룡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조용히 그에게 응수했다. 자룡의 침착한 반응에 잠시 탐색하듯 둘을 살피던 장비는 이내 큰 소리로 투덜댔다.



"호위는 무엇하러 하오. 어차피 물녀석이니만큼, 내버려둬도 알아서 이런저런 변신을 할 수 있지 않겠소."



장비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숨을 죽은 채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명은 겉으로는 냉정을 가장한 채로 학우선으로 입가를 가리고 꼿꼿하게 서 있었으나, 바로 곁에 선 자룡은 그의 몸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공명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장비의 의도에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던 자룡은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주군의 명이오, 장 장군.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치 않겠소."
".... 뭐라?"



장비의 눈꼬리가 더욱 사납게 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공명은 심상치않은 그의 모습에 자룡을 말리기 위해 입을 벌리려고 했으나, 그보다 조금 먼저 자룡은 공명을 자신의 배후에 놓을 수 있도록 발을 움직였다. 졸지에 자룡의 등 뒤에 숨은 꼴이 되어버린 공명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자룡은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지키라 명하신 군사에 대한 무례를 거두시오. 그렇지 않다면 적으로 간주하도록 하겠소. 나의 주군은 당신이 아니오. 장 장군."
"그대는 지금 물 녀석 때문에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동안 생사를 함께 해 온 동지인 나를?"
"우리의 군사이시오. 더 이상의 모욕은 삼가시오."



단호한 자룡의 말에 점차 공기는 싸늘해져갔다. 장비는 자룡의 말에 더이상 분을 참지 않고,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채고는 서로 머뭇대며 장소를 빗겨 달아나거나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구경꾼들이 숨을 죽이는 것이 느껴진다. 자룡은 언제라도 무기를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바꿨다. 공명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룡은 조금 더 공명에게서 거리를 두며 앞으로 나왔다.



"저런 녀석때문에 의리를 저버리겠다는 네 놈 따위, 죽어 마땅하다."
"...."
"너는 이 군의 무사가 아니더냐. 저런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고 싶은가. 너의 자긍심은 어디로 간 것이냐."
"저는 주군의 장군입니다. 그 분께서 시키신 일을 수행하는 것이 저의 임무. 주군께서 지키라 명하신 분을 해하는 사람은 누구든 나의 적이오."
".... 동료를 적이라고 부르는 놈 따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장비는 이내 장팔사모를 꼬나잡았다. 그에 맞춰 자룡도 자신의 장검에 손을 대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훈련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호각끼리의 싸움이 막 터질 듯한 위기감을 느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이제와서는 유비나 관우가 아닌 이상,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둘을 능가하는 무술을 구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말려봐야 소용이 없다.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그 때 낭랑한 목소리가 둘의 살기를 뚫고 날아들어왔다. 청아하고 고애한 목소리에, 둘은 쌓아가던 살기를 잠시 멈추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자룡의 뒤에 있던 공명이 어느샌가 그 둘의 사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장비님. 무기를 거두십시오. 조운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군사가 무엇이길래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지금 말씀하신대로 저는 이 군의 군사입니다."



공명은 의연한 자세로 자신을 노려봐오는 장비를 마주 바라봤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깊고 검은 눈동자. 장비는 자신을 바라봐오는 공명의 시선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장군들께 명령하는 바입니다. 무기를 거두십시오.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자에게는 군령에 의해 합당한 법을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당당한 말투. 공명도가 높은 청아한 공명의 목소리가 훈련장을 관통했다. 자룡은 그 명령에 맞춰 칼을 다시 칼집 내로 집어넣었으나 장비는 못마땅한 듯 여전히 장팔사모를 잡은 채로 공명과 자룡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 서슬퍼런 시선에 주변의 사람들이 오히려 움찔거렸으나, 막상 당사자인 공명은 담담하게 그 시선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영 마음에 안 드는군. 당신."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십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애송이 주제에 형님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지를 않나, 무(武)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는 서생주제에 군사라는 자리에 앉아서 거들먹대지를 않나, 지금까지 아무런 전적도 없으면서 큰형님과 붙어서 히히덕대는 꼴에, 여자처럼 생긴 얼굴까지 다 싫소."



자룡은 도가 지나친 장비의 말에 다시 검에 손을 가져다댔지만, 공명은 낭랑한 목소리로 웃어보였다. 그리도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어찌 웃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불쾌감은 전혀 섞이지 않은 청량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공명의 모습에 주변에서는 단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좋소이다. 장군. 그럼 장군의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 량(亮),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나이다. 유황숙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것은 이제와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평생 주군을 위해 충성하리다. 그리고 가능한 곧 주군의 숙소에서 나오도록 하지요. 여자처럼 생긴 얼굴은, 제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장군께서 참으셔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개 서생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번에 있을 전투에서 그 생각을 바꿔드리도록 하지요."
".... 생각을 바꿔준다면?"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드리지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어찌할 생각이시오?"



장비는 마땅치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러나 공명은 웃음끼를 거두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제 목이라도 드리오리다."



공명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던 장비는, 그제서야 자신의 무기를 거두고는 뒤로 돌아섰다.



"그 말, 기억하고 계시오."



뚜벅뚜벅, 걸어가는 장비의 뒷모습에 공명은 가볍게 무릎을 굽혀 예를 취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자신도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수근대는 병사들을 뒤로 한 채,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공명의 뒤를 황급히 쫓아가던 자룡은 사람들의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뜰로 들어선 공명이 순간적으로 주저앉자 놀라 달려갔다.



"군사!!"
"소리를 낮추십시오. 장군."



어디가 아픈 것인가. 허겁지겁 다가가 가까이에서 본 공명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하얀 얼굴에는 식은땀이 묻어나고 있었고, 남색 관복 속에 감춰진 가는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 자룡은, 너무도 의연하던 공명의 모습이 잘 만들어진 가면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는 가만히 그의 등을 내려다봤다. 어리고, 약한데, 강하다. 자룡은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감을 지닌 어린 사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었다. 연인 장비의 모습은, 그 누구도 쉽게 대응하기 힘들다. 자룡은 자신조차도 그와 정식으로 대면할 때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껴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런 힘도 없는 문관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에는, 장비는 너무나도 사납고, 성질이 급한 사내였다.



자룡은 자신이 생각하는 사이,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일어선 공명이 자신을 향해 돌아서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키는 자신과 크게 차이나지 않음에도 뼈는 훨씬 가늘다. 이윽고 자룡은 돌아선 공명의 얼굴이 너무도 평온함에 놀랐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명은 자룡을 향해 희미하게 웃음을 보였다.



"폐를 끼쳤습니다. 장군."
".... 아닙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일은 다시는 하지 마십시오."



공명의 단호한 말에, 자룡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바람에 부딪혀 움직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공명은 자룡에게로 손을 뻗었다. 얼떨결에 그 손에 마주 손을 내민 자룡은 공명이 부드럽게 자신을 손을 잡아오자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자룡의 반응에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 듯 공명은 조금 힘을 주어 자룡의 거친 손을 쥐었다가 이내 손을 빼내었다. 빠져나가는 공명의 손이 아쉬운 듯, 자룡의 손이 조금 그를 따라갔지만, 이내 공중에서 떨어진 손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장군께서 저의 편에 서 주신 것은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허나, 군 내의 분열은 아니됩니다."
"...."
"아시겠습니까?"



공명의 확인에 자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오히려 공명을 더욱 고립시켜버릴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주변의 사람을 말려들도록 해서 군의 분열을 이룰 수 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룡은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공명에 대한 무례에 화가 나, 자신답지 않게 성급하게 행동했다. 자룡은 어쩐지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 눈이 웃고 있음에 안도했다.



"뭐.. 원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습니다만."



공명은 자신을 바라봐오는 자룡에게 웃음을 보이면서 천천히 걸음을 자신의 집무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보조를 맞춰 걸어오는 자룡의 발소리가 믿음직하다. 공명은 잠시 전에 자신의 편을 들어보인 자룡에게 매달리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눌렀다. 단순한 동정심이나 무지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진정한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아까의 사건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신뢰의 동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 목을 잘리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전투에서는 반드시 이겨야겠군요."



공명은 말을 맺으면서 자신의 집무실 앞까지 함께 온 자룡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름답다. 자룡은 공명이 무사히 집무실로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뒤를 돌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햇다. 하지만 내내 생각나는 그 웃는 아름다운 얼굴에, 자신의 가슴이 두근대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깨닫지 못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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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나라도 뒤숭숭하고 해서, 글을 쓰는 데 시간이 걸렸네요.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사죄드립니다.
*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Comments
루체  (2010.11.30-01:44:24) 
뭐 장비 입장에서 공명은 굴러들어온 돌이었을 테니 툴툴대기도 하겠지만 너무 그러면 못씁니다 장비 씨<야. 그래도 자룡이 공명의 일관된 조력자이자 편이라서 다행입니다. 요즘들어 한창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삼국에서도 그런 관계가 얼핏 엿보이다 보니 저 둘의 관계는 공인(!)인가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ㅎㅎㅎ 이래저래 풋풋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두근거린다고 해야할지. 우리 군사님은 여전히 우아하시고 자룡장군운 슬슬 공명빠<의 기운이 보이시고 ㅎㅎ
샤민  (2010.11.30-16:38:28) 
군사님이 참 아름답네요..또 아직은 많이 어리고 ㅠㅠ 크 웃으면서든 정색하고서든 당당하게 말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ㅠㅠ "여자처럼 생긴 얼굴은, 제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장군께서 참으셔야만 하겠습니다" 읔 이부분 저는 왜 웃음이 나올까요 ㅋㅋㅋㅋㅋ
모래바람  (2010.12.23-20:00:43)  
흑흑 ㅠ 너무 좋습니다 ㅠㅅㅠ 왠지 두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상상되는거 같아요 ㅠㅠ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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