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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렌]  적벽  2010.03.07-1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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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룰 수 없게 된 꿈이 있었다. 같은 꿈을 같이 꾸며 손책이 천하를 쥐게 되리라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리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님을, 때로는 정말로 어이없는 방식으로 죽게 되는 것임을 무시하려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장으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미래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임에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자신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또한 너는 얼마나 어리석으냐, 책. 함께 천하를 쥐겠다던 맹세는 어디로 잊어버리고 그렇게 가버리느냐. 남은 자는 생각지 않고 어찌 그리 가볍게 후이후이 가버려.





"뒷 사람들을 믿었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백부?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한다면 나중에 만났을 때 제대로 화를 내 주겠네."





손오를 잘 부탁한다니, 손오는 너의 꿈이었고 이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상을 너에게 걸었고 또한 바쳤다. 그래, 네가 나의 꿈이었다. 네가 만들려던 나라가 나의 꿈이고 이상이었다. 함께 걷고 있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너는 배 자체였고 나는 조정자라고 할 수 있었겠지. 조정자가 사라져도 배는 간다. 하지만 배가 침몰하면 조정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너는 내게 네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네가 이루지 못한 이상 그것들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한 것은 손책이 다스리는 천하이지 손권이 다스리는 천하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지금 죽은 이가 남긴 유언과 유산을 끌어안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꿈꾼 세상이 손권이 꿈꾸는 세상과는 다름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 끝났다. 더 이상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고 있던 친우는 곁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바쳤던 자신의 꿈조차도 그렇게 끝나버린 것이다.







──한 생에 손에 넣을 수 없는 천하라고 생각은 했지만은.







동남풍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불길은 멈출 기세도 없이 더욱 커져갔다. 저가운데 처음 불꽃이 시작된 곳은 이제 어찌 되어있을 것인가. 다 타고 남아 재만 남지 않았으련가. 이제 그의 시대가, 너무나도 짧았던 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최대의 승전이 될 이곳 적벽에서 주유는 느꼈다. 주군을 잃고서도 아직까지도 그 꿈을 버리지 못해 새로운 이들과는 다른 꿈을 꾸는 이 퇴물을 이제 세상은 버리려고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번 타오를 기회를 주고 이제는 버리려고 하는가.







──결국 새 바람은 이렇게 불고 마는가.







손책의 신하인가 손권의 신하인가. 결코 같지 않은 둘의 오 중 누구의 오를 따르는 자들인가. 자신들의 시대는 끝났다, 아니 이미 몇년 전에 끝났어야 했다. 이 승전 앞에 가슴 뛰는 일도 없이 그런 예감이 들어 주유는 쓰게 웃고 말았다. 끝나리라. 시대가 그리 되었기에 끝나고 말리라. 이어지기는 하되 이어진 것은 처음의 꿈은 아니리라. 이제는 그와 약속했던 꿈은, 그의 친우이자 주군과 공유했던 이상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것이 되었음을 주유는 선선히 인정했다.







"백부, 장강이 불타고 있네. 동남풍이 불고 있지. ..그리고 위는 패배할걸세."







그리고 언젠가 이 바람도 멎고 이 불도 꺼지리라. 그렇지만 이 강은 고고히 계속 흘러가겠지. 수많은 피와 눈물을 삼키고도 흐를 것이다. 역사 또한 그러한 것인가, 꿈을 꾸고 이 세상을 달려나갔던 우리들도 결국 그렇게 묻혀 사라지는가. 잊혀지는가. 달려나가 뒤돌아 본 그 자리에는 더 이상 발자욱조차 남아있지 않은가. 그런다해도 나아가 발버둥치며 도도히 흐르는 역사에 흔적이라도 새겨보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인가?







  후일 사관은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할까. 결국 이루지 못할 꿈을 바라 달려나간 우리들을 그들은 어리석다고 말할까. 결국 우리를 뒤로 하고 흘러갈 시대는 우리를 그렇게 평가할까? 어리석었다고.







그러나 아직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살아갔던 시간들이 있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꿈들이 있다. 숨가쁘게 달려나갔던 시절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한데. 후세들은 그것을 어리석다고 말할까, 백부.







후세가 나를 일컬어 어리석다 하더라도, 그래도 가리라. 그래도 하리라. 여기에 살아 있는 것은 주유 공근임을 알라. 이 난세에 태어나 죽는 곳이 전장이라면 그렇게 하리라. 이제는 더 이상 뒤돌아보는 이도 없는 어리석음을 알라. 그래도 하리라. 그래도 가리라. 얼마 남지 않은 끝을 향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그래도 고향땅인 이 오에 대한 걱정을 차마 내려놓지 못한채 가게 될 때가 올 것임을 주유는 예감했다.







너무나 짧구나. 책. 우리의 원을 이루기에는 이 생이 너무나도 짧구나.

후회는 없으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뿐이로다.






  검푸른 바다 위 타오르는 불길이 어둠을 살랐다. 나무를 삼켜 노란빛이라고는 없이 핏빛으로 불타는 불꽃은 영원히 이룰 수 없게 된 꿈을 위한 번제물이었다. 주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보고 있는가, 책?
너의 꿈을 위한 불길이로다.





동남풍이 거세게 불던 때, 적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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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즈는 이렇게 하루하루 삼국지 덕이..ㅜㅜ



원래의 적벽은 이런 느낌은 아니겠지만은. 진삼 4의 주유는 그런 느낌이 강해서. 그의 이상이 온전히 그의 이상이 아니었기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향하던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안타까운 것같다. 커플링의 의미라기보다는, 동료로서의 의미.



소교대교 지못미. 써주고 싶었지만 주유가 대교를 뭐라 부르는지 몰라서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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